
보지 말아야 할 것을 읽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이 남기신 마지막 일기장을 넘기는 순간.
아무것도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른 새벽 78세 어머니가 아파트 베란다에 조기를 내거시며 "이동네 것들은 왜 이리 인정머리도 없는지..다른건 몰라도 국장이라는데 조기 하나 내거는 성의도 없는가."
충청도가 고향인 어머니. 한국전쟁 중에 외할머니와 외삼촌을 잃고, 북한에서 홀홀 단신으로 내려오신 아버지와 결혼하여 6남매를 힘겹게 키우신 지극히 평범한 범부.
대통령 김대중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으신 분이 김대중을 보내며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아마 어머니께선 김대중이란 인물을 보내며 근 80년 세월을 사셨던 회한과 상념이 떠오르시나 봅니다.
우리집 막내 아들은 김대중 대통령을 잘 모릅니다.
또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지요.
그러나 할머니의 눈물을 보곤 숙연해지더군요.
그렇습니다.
역사는 책이나 문서로만 이어져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할아버지.할머니, 아버지.어머니.아들.딸. 손자 손녀......
그래서 역사란 무섭고 엄숙한 교훈입니다.
"이제 아름다운 꽃의 계절이자 훈풍의 계절이 왔다. 꽃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마당의 진달래와 연대 뒷동산의 진달래가 이미졌다.지금 우리 마당에는 영산홍과 철쭉꽃이 보기좋게 피어 있다."
김대중 대통령님의 마지막 일기장 내용 중 일부입니다만 저는 이구절에서 그만 슬픔을 감당할 수 없어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아~~ 김대중! 아름다운 사람 김대중!
독재정권에 의해 수없이 행해진 야만적 고문에 육신은 자유로이 일으켜 세울 수 없으나 휠체어에 앉아서도 꽃과 자유를 꿈꾸는 할아버지.
진달래와 영산홍,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고향땅. 아니 한반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가슴에 담으시려는 모습이 선연히 떠올라 눈물을 자꾸 쏟습니다.
아파트 베란다 좁은 공간에 심은 꽃을 자식 바라보듯 살피시는 어머니.
봉선화 붉은 꽃잎을 보며 일제 식민지 어린 시절을,과꽃이 피어날 때면 전쟁의 포화속에서 잠드신 어머니와 오빠(외할머니와 외삼촌)를 그리워할 수 밖에 없는 어머니.
그분들의 가슴과 눈가에 맺혀 있는 이땅에 대한 사랑,설움,한, 또 희망!
김대중!
꽃을 보고 싶어하고 그꽃을 사랑으로 가꾸는 당신을 통해 나는 부모를 더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갖게되고, 내자식들에게 무엇을 남겨야하는가를 다시 깨닫게 됩니다.
당신에게 영산홍과 철쭉꽃,진달래는 어떤 사연이 있을지 자세히 알순 없으나 조문길에 뵈온 이희호 여사님과 사진으로 본 큰아드님의 모습이 어른거려 서러움을 주체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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