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9일 월요일

느티나무 편지

느티나무 편지를 2~3일 간격으로 보내주고 있는 진영우형의 최근 글 한편을 올려봅니다.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삶을 살것인가를 뒤볼아보는 계기가 될 듯 합니다.

 

 

--오늘의 주제---

 

'왜 사는냐고 물으면 웃지요' 이런 말 있지요

나 스스로 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뭔 도를 상당히 틔워서 빙그레 웃기만 할 만큼 그러지는 못하고요

글쎄 뭐 그게 왜 사는냐 하면 하고 머뭇거리면서 몇마디 주워 섬기는 정도겠죠

그러면서 한 두가지 정도는 평소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싶어요


사람에게 소중한 것은 물질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소유-소비가 아니라

자기내면의 정신적 가치가 참으로 중요하다

자신의 정신적 가치를 깊이-높이-넓이 추구하는 것이 사는 이유다 하는게 하나인데

이걸 제가 즐겨 하는 표현대로 하면 진정성의 眞,바로 진실의 문제,참 입니다

당신은 참되냐,참되게 살려고 노력하냐

진실한 사람이 가장 잘 사는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다른 하나는 당신은 올바르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실천하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건 사회와 정치와 나라와 역사에 대한 관점과 태도입니다

비판적이라고 과격하다고 열성적이라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을 바르게 바꾸지 않고는 결코 정신적 가치의 문제도 제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걸 다시 쉽게 말해보면 이렇습니다

당신은 정신적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참되게 살려고 노력하는냐

당신은 이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어떻게 사회-정치적으로 실천하고 있는냐 입니다


이 양자를 제대로 통일시킨 표상이 사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에수-석가-간디-톨스토이- 니어링-함석헌-안병무-권정생-리영희 이런 이들 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요 도를 닦는 것이요 신앙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내가 사는 이유입니다



당신은 왜 사세요?




2009년 6월 22일 월요일

느티나무 편지-영우형!

조용하고 인자한 풍모의 형님.

울산이 고향인 선배는 키도 크고  누가 봐도 잘생긴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그를 한때 못말리는 열혈 민주투사라고 불렀지만 개인적으론 별로 어울린다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180cm를 훌쩍 넘긴 큰키에 구불구불 말려 올라간 머리칼.

조선 사람치곤 너무나 오똑한 콧날.

 

그런 그가 자신의 주장을 펴면 그 끝을 볼떄까지 지치지 않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열정의 소유자란 걸 알게 되고, 행동의 시점이 오면 순신간에 불섶으로 일어나 호령하던 장부란 점을 오랜 시간이 흐른뒤 알게 되었습니다. 또 순간만큼은 누구도 그 형님을 말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문득 문득 그 선배를 볼떄면 고 문익환 목사님을 연상하게 되더군요.

 

지난 세월의 역사가  한동안 어떤 사람을 중심으로 무엇인가를 도모하기를 강제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역시 형님은 누구의 말보다 앞서 행동으로 그 역할을 담당해주었지요.

 

세월이 갔습니다.

한동안의 꿈과 목표도 빛을 다해갔습니다.

서로를 강제했던 끈끈한 속박도 그 힘을 다해가더군요.

서럽고 안타깝지만 나는 그손을 놓아버리고 말았습니다.모두처럼....

 

첫번째로 형님이 쓰러졌습니다.

뇌혈관이 막히는 증세로 말이죠.

두번째로 형수님이 쓰러졌습니다.

형수님 역시 뇌혈관쪽 문제였습니다.

다행히 형님은 스스로 털고 일어났지만 형수님은 어려운 수술과정을 거쳐, 오랜기간 병원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지난 3월 형님이 계신 곳을 찾았습니다.

형님 부부는 울산이 아닌 충북 괴산 외딴 곳 시골마을 농가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술한잔 못하는 형님 부부앞에서 동행한 후배들이 실컷 취해 산골 전체가 떠나가도록 노랠 불렀습니다. 이별은 이별일 뿐이고,  만남은 새롭게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다짐과 함께 말이죠.

 

묵은 노래와 사연은 떠나 보내고 서로를 다시 부등켜안고, 정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자며  격려와 위로를 찐하게 나누었습니다. 최소한 진우형과 형수만큼은 숲과 나무, 바위, 흐르는 물을 벗삼아  알콩달콩  지냈으면 했습니다.

 

그런 그가 얼마전 지인들에게 다시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본격적인 인터넷 정치를 시작한겁니다.

강하고 격한 논지로 자신의 역사를 부활시키고 있습니다.

모질고 모진 병이 또 도졌습니다.

대한민국, 아니 세상밖 어디에 나가있어도 벗어던질 수 없는 "시대양심"이라는 바위산의 굴레.

 

아마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겠지만 그냥 형님 집앞에 서있는 느티나무처럼 넉넉한 그늘만이어도 좋을텐데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e-mail 사상검증의 세상

                                              차기 검찰총장으로 내정된

                                           천성관 서울지검장(출처:오마이뉴스)

 

 

무서운 세상이다.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검찰의 기소내용 중 한 방송작가의 개인 이메일 내용을 범죄사실로 공표해버린 것이 참 무섭다.

 

방송작가는 지인에게 보낸 메일에서 MB정권과 한나라당 후보에 관한 비판과 분노를 거칠지만 소신껏 표현하였다. 그리고 또 자신이 지지하는 당이나 후보에 관한 언급도 있었다.

 

그런데 작가의 생각과 주장은 검찰 수사관들에겐 광우병 왜곡보도의 정치적 동기로, 국가를 위협하는 불온한 사상으로  받아들여지고, 구체적 범죄사실인양 언론에 노출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검찰의 주장대로라면 방송작가의 불온한 정치사상과 동기가 PD수첩 제작진,나아가 MBC라는 거대 방송을 움직여  광우병 보도 프로그램을 의도적으로 왜곡시켰고, 결과적으론 약 1여년간에 벌어진 촛불시위의 배후가 되고 만다.

 

이정도의 범죄라면 법치를 강조하는 검찰로선 명예훼손죄가 아니라 국가보안법 위반이나 집시법 위반으로 PD수첩 작가를 기소하고, 제작진과 MBC, 촛불가담자 전체를 종범으로 처리하는 것이 맞다.

 

한 방송작가의 사적인 정치적 견해가 수백만의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과 한 시대를 호흡하고 산다는 자체가 소름끼치도록 비극적이다.

이건 과거 군사독재 시절 막걸리 보안법보다 더 심하다.

그래도 그땐 말이라도 뱉었으니까.

 

하루에도 수십통의 메일을 주고 받고 개인 신변잡기로부터 정치적 견해 등 세상 살아가는 모든 애기들을 소통하는 도구로 자리잡은 메일이 범죄의 증거로 언제든지 파헤쳐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포스럽다.

 

개인 메일을 초법적으로 뒤지고 사건과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내용을 범죄사실화 하는 검찰이나, 그것을 2차,3차 재가공하여 엄청난 범죄로 재구성시키는  영혼없는 찌라시 언론들.

 

어제 저녁, 용산철거민 참사와 PD수첩을 진두 지휘했던 천성관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이 차기 검찰총장으로 내정되고.또 국세청장으론 교수 출신 MB측근이 내정되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청와대와 한나라당에선 본격적인 개혁의 신호탄이라고 자화자찬한다.

 

참 대단한 머리와 배짱을 지닌 사람들이다.

어차피 국민과의 소통은 불가능하리라 여겼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절망으로 바뀌고 앞으로 전개될 상황이 걱정스러울뿐이다.

 

새로운 검찰총장과 국세청장 내정에 대해 야당인 민주당 유은혜 부대변인 논평처럼 "앞으로 어떤 표적 수사와 보복 세무조사가 자행될지 심히 걱정스럽다"는 우려가 현실화되는 그런 일만이라도 없기를 미련스럽지만 또 기대해본다.

 

 

2009년 6월 18일 목요일

양극화 프레임을 버려야 민주당이 산다.

글쓴이 조회 (126) | 추천 (0) |점수 (0) | 2009-06-17 15:51:42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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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민주당 선언 초안이 발표되었지만 토론과 확산을 위한-이는 추상에서 구체로의 이행을 뜻한다-프로그램이 아직 가동되고 있지 못하다.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라는 뜻밖의 사태에 따른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향후 전국 순회 당원, 국민 토론회가 예정대로 진행되었으면 한다. 오랫만에 뉴민주당 플랜에 대한 진지한 평가글이 있어 퍼서 옮겨 싣는다.---

 

양극화 프레임을 버려야 민주당이 산다.

 

정견(正見)이 문제다

불교에서 깨달음의 경지로 나아가기 위한 실천수행 방법론이 팔정도(八正道)다. 그 출발은 정견(正見)이다. 올바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토니블레어가 노동당을 혁신하면서 수없이 강조했는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를 올바로 보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첫째, 한국 사회 자체가 ‘비동시성의 동시성’사회라는 통찰에서 보듯이 대단히 복잡하고, 다면적이며, 둘째, 알거나 말하면 다치는 불편한 진실이 많아 진실(깊은 속살과 바닥현실)에 대한 접근이 어렵고, 셋째, 진보와 보수의 주류가 피해의식에 찌들고, 성공신화에 눈이 멀고, 과도한 탐욕에 사로잡혀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개념과 철학을 가지고 있고, 넷째 이론과 실물, 세분화.전문화된 각 영역간의 소통과 대화가 부족하여 하나같이 장님코끼리 만지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와 보수를 초월하여 주요한 난제 중의 하나가 자신이 발 디디고 살고, 개혁하려는 한국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진보든 보수든 한국 사회를 바로 보지 못하니 획기적으로 개혁하려는 세력 일수록 욕은 욕대로 먹고, 성과는 별무신통일 가능성이 많다. 작년 촛불 시위 때, “이명박, 넌 제발 아무것도 하지마!”라는 구호가 꽤 넓은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눈과 귀는 멀었지만, 힘은 세고, 부지런하고, 과단성까지 갖춘 사람의 대역사(?)에 대한 우려이다. 

 

참고로 팔정도는 다음과 같다.

불교도가 아니라도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로 삼을 만한 내용이다.

① 정견(正見):올바로 보는 것.

② 정사(正思:正思惟):올바로 생각하는 것.

③ 정어(正語):올바로 말하는 것.

④ 정업(正業):올바로 행동하는 것.

⑤ 정명(正命):올바로 목숨을 유지하는 것.

⑥ 정근(正勤:正精進):올바로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

⑦ 정념(正念):올바로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

⑧ 정정(正定):올바로 마음을 안정하는 것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뉴민주당 선언은 수많은 추상(抽象)적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연한 일이다.

추상적 개념은 한자 뜻 그대로 특정 측면 혹은 주요한 측면은 뽑아내고 나머지는 버리는 편광안경이다. 편광안경이 불량이면 엉뚱한 것은 취하고,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친다. 그리고 취하는 내용이나 버리는 내용은 다 특정한 경험이나 연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개념에 의해 마음이나 사고가 결정지워지는 측면이 큰 것이다. 개념(언어)에 의해 사물, 특히 정치사회적 현상은 재창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치사회 현상을 파악하는 개념들은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특정한 정치사회 세력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념(언어)의 이런 성질을 주목한 사람이 인지언어학-이는 무의식적인 마음의 작용을 통해 언어의 성질을 이해하려는 학문이다-의 창시자 ‘조지 레이코프’ 박사다. 그는 2000년, 2004년 연이어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이유를 분석한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썼는데, 그가 내린 결론은 사용하는 언어=프레임(frame)이 미국 공화당에 유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미국의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이다)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로서, 이를 재구성한다는 것은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란다. 요컨대 자신이나 대중들이 다르게 생각하려면, 다르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극화와 신자유주의 프레임의 마술

상당수 진보 세력이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 혹은 핵심적인 모순.부조리를 설명할 때 즐겨 사용하는 개념이 양극화와 신자유주의이다.

 

양극화라는 개념은 계층(학력, 직능, 소득, 자산), 기업, 산업, 부문, 지역 등 경제사회 주체들의 격차가 커지고, 또 상하간 유동성이 떨어지는 현상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이는 1990년대 들어 세계화(개방화), 지식정보화, 자유화의 파도가 밀려들면서 두드러진 현상이다. 양극화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통계는 무수히 많다. 지니 계수, 소득 5분위 배율, 빈곤율, 정규직-비정규직의 소득격차, 수출기업-내수기업과 대기업-중소기업의 수익성 격차의 확대를 알리는 통계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입각하여 상당수 진보세력은 양극화 해소를 자명한 시대정신으로 간주한다. 자칭 진짜 진보세력으로부터는 우경화 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뉴민주당 선언 조차도 이렇게 단언한다.

 

   "한국사회의 최대문제는 양극화 심화이다. 양극화 해소는 시대정신이 되었다. 계층 간 소득 및 부의 격차가 크게 확대되었다. 소득분배가 외환위기 이후 OECD 국가들 중 가장 나쁜 수준으로 악화 되었다. 양극화는 내수산업을 위축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 양극화는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한다. 양극화 문제는 기본적으로 일자리 위기에 기인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일자리가 늘지 않고 있다. 여성, 청년, 노인 일자리 등 일자리가 태부족이다. 일자리의 질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자영업 종사자는 취업자 4명중 1명이고 비정규직은 800만 명이 넘고 있다. 경제양극화 심화는 정치의 실패 때문이다. 정치가 양극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것도 정치의 실패이다.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복지제도로 인해 소득격차가 커지고, 높은 사교육비로 인해 빈부격차가 대물림 되고 있는 것도 근본적으로 정치 실패에 기인한다. 새로운 경제사회의 틀에 맞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

 

이는 뉴민주당 선언의 세계관, 가치관, 문제의식이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난, 뉴민주당 선언의 정수에 해당되는 문장이다.

 

분명한 것은 보수든 진보든 양극화의 심각성과 각종 격차의 적정화(합리화)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원인에 대한 진단과 해결 방안이다. 또 하나는 양극화가 어차피 ‘사물의 어떤 측면은 버리고 어떤 측면은 취하는’ 편광안경인 이상 그것이 버리는 것과 취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만약 이 편광안경이 국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놓쳐버린다면, 또 이 프레임이 대중들의 심리와 사고에 엉뚱한(진보에 매우 불리한) 영향을 끼친다면 양극화라는 개념은 꼭 필요한 곳 아니면 쓰지 말아야 한다.

 

허수아비 때리기

먼저 진보가 내놓는 양극화의 원인에 대한 진단과 해결 방안을 살펴보자.

자칭 진짜 진보는 양극화의 원인을 압도적으로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패키지 내지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개방화, 경쟁 강화=소비자 선택권 강화, (금융)자유화=규제완화, 시장화, 민영화, 유연화(노동 유연성 강화), 유동화(금융 유동성 강화), 감세, 복지축소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그 해법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패키지를 거부하고,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을 해체 하는 것이다. 물론 뉴민주당 선언은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단 한번도 쓰지 않았다. 대신에 시장만능주의라는 표현이 3번 나오는데 이 말이 내포하는 의미는 신자유주의와 같다.

 

그런데 세상 만사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그 어떤 가치라도 지나치면 모자란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시장만능주의든 경쟁만능주의든 국가만능주의든 모든 만능주의는 악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시장만능주의라면, 또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의 경제사회 정책이 시장만능주의라면 비난 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것이 양극화의 주된 원인이든 부차적 원인이든 비난 받아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생산적 복지의 김대중, 동반성장-균형발전-복지강화의 노무현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을 좌파 정부로 몰아세웠던 이명박 정부조차도 시장만능주의로 뭉뚱그리기에는 석연찮은 점이 많다.

 

그래서 위에서 거론된 정부들을 뭉뚱그려서 신자유주의니 시장만능주의니 하면서 허수아비 때리기나 마녀 사냥을 할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가치들이 특정한 시공간(역사적 상황)에서, 또 다양한 영역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많이 구현했다고 하는 영국 마가렛 대처 정부와 토니 블레어 정부, 미국 클린턴 정부, 아르헨티나  메넴 정부, 브라질의 까르도수와 룰라 정부, 호주와 뉴질랜드의 노동당 정부, 마오쩌뚱 사후(1978년 이후)의 중국 공산당 정권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다. 비록 이전에 비해 소득격차가 커졌고, 따라서 양극화가 심화되었을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만약 이 정부들의 경제정책 패키지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패키지도 신자유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할 근거는 얼마든지 있다.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아예 좌파 정부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것만 봐도 신자유주의와 양극화 프레임은 한 정부의 성과와 성격을 진단하고, 사회적 현안의 우선순위를 내오기에는 너무나 문제 많은 편광안경(프레임)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해 준다.

 

한국 사회를 똑똑히 보라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국이 처한 역사적 상황을 살펴보자. 한국은 소비자 선택권 이나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과소시장 영역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독과점, 각종 경쟁제한 장벽과 진입장벽, 실력보다 연고정실을 중시하는 문화가 주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독과점 시장, 공공부문, 대기업.공기업 생산현장, 청소년이 선망하는 직업(전문 자격증) 세계, 전임교수 세계, 부동산 시장, 재벌.대기업 중심의 먹이사슬, 재정과 자리를 둘러싼 먹이사슬(정치와 관료 세계)이 그런 영역이다. 이는 양반관료제, 식민통치, 분단과 전쟁, 국가 주도의 변칙적 산업화의 유산이자,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던 후진적 노동운동의 유산이다. 이 영역에는 이른바 블레어와 클린턴 정부가 수용했던 신자유주의적 가치(시장만능주의가 아니다)가 절실하다.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진보이고, 개혁이고, 공공성을 담보한다. 적어도 과소시장(경쟁) 영역에 대해 신자유주의적 가치의 적정성을 시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 전반을 공공의 적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보수이고, 반개혁이고, 몰염치한 집단이기주의이다.

 

물론 한국은 적절한 규제, 감독, 보호 장치도 없이 가혹한 시장(경쟁) 원리가 작동하는 과잉시장(경쟁) 영역도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실업자, 영세자영업자, 비정규직, 장애인, 시간강사, 하청 중소기업, 무연고자, 청년세대, 미래세대의 세계가 그런 영역이다. 이 영역에는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사민주의 내지 공동체주의적 가치가 진보이고, 개혁이고, 공공성을 담보한다.

이 영역에 대한 적절한 규제, 감독, 보호(배려) 조치는 상식이자, 현대적 자유주의(신자유주의)와 사민주의가 공유하는 가치라고도 볼 수 있다. 워싱턴 컨센서스에도 이런 정신은 면면히 흐르고 있다. 애초에 경쟁 기회, 조건, 출발선의 불평등이 현격한데 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부르짖는 것은 현대의 자유주의에도 위배되기 때문이다. 사실 신자유주의, 시장만능주의, 양극화 극복을 시대정신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주로 보는 세계는 바로 이 세계이다.  

 

양극화 프레임이 버리는 것

이제 양극화 프레임이 사고를 어떻게 조직하는지, 사물의 어떤 측면을 취하고, 어떤 측면을 버리는지 살펴보자.

 

양극화 프레임은 격차의 크기에 주목한다. 격차의 성격을 묻지 않는다. 그것이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의 결과인지 아닌지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은 먹자골목에서 고객이 줄을 길게 서는 식당과 파리 날리는 식당처럼,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고객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격차도 있다. 세계화, 지식정보화, 교통수단의 발달, 소비자 선택권의 강화로 인해 이런 류의 격차가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경제발전의 필연적인 결과인데, 웬만큼 격차가 크지 않고서는 국가의 규제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단지 세금 정책과 복지 정책으로 그 격차를 완충하고, 패자부활전을 도울 수 있을 뿐이다. 양극화 프레임은 이 문제를 선명하게 인식하고 해결을 추동하는 측면은 있다. 그래서 나름대로 유용성이 있는 프레임인 것이다.

 

또 하나의 격차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전임교수와 시간강사, 대형마트-중소 협력업체 관계처럼 전자가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쟁) 원리를 너무 배제하고, 자신들이 기여, 부담한 것에 비해 너무 많은 권리, 이익을 누리기 때문에 생긴 격차도 있다. 한국의 양극화의 상당부분은 이런 성격의 양극화다. 그런데 기존의 주로 신자유주의를 원흉으로 지목하는 양극화 담론은 이런 성격의 양극화를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또한 노무현 전대통령의 가족의 부적절한 돈 거래에서 보듯이, 또 수없이 터져 나오는 국회의원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서 보듯임기가 4~5년에 불과한 계약직(비정규직) 공무원이자, 연금도 거의 없고, 퇴임 이후 사실상 취업 제한을 받는 직업 정치인의 보수를 30년 직업 공무원 생활한 사람의 보수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문제(너무 적은 격차의 문제)도 인식하지 못한다. 오세훈 같은 태생이 부자인 정치인과 나 같은 사람(공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생을 걸기에 나도 정치인이다)의 격차도, 현역 의원과 그에 도전하는 건달 정치인의 격차도 마찬가지다. 

 

한국민들은 삼성전자 등기이사로서 이건희가 받는 고액 연봉과 주주로서 가져가는 거액의 배당금을 문제 삼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의 고급 취미 생활과 고급 주택 등에 대해서도 문제 삼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의 불법적 비자금과 경영권 승계와 공정거래법을 어겨가면서 일삼는 가혹한 협력업체 약탈에 대해서는 분노하는 사람이 많다. 양극화 프레임은 이를 차별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국가는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 결과 일지라도 사회적 약자, 패자에 대해서는 사회안전망으로 포용해야 한다. 동시에 승자독식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약 공정하지 않은 경쟁 결과라면 게임규칙을 바르게 정립, 감독하는 일이 급선무다. 그런데 양극화 담론은 대체로 사회적 안전망으로 약자, 패자를 포용하고, 세금을 통해서 부의 이전을 추구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양극화가 강을 오염시키는 유해 물질이라면  그것이 발생하는 '상류'에서 할 일을 등한시하고, '하류'에서만 변죽을 올린다는 것이다. 실제 뉴민주당 선언의 실질적인 양극화 대책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복지제도’ 개혁과 ‘중산층과 서민에 대한 즉각적인, 그리고 포괄적인 구제’이다. 성장을 강조했지만, 그 내용은 부실하고,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깊이 공감할 만한 내용이 없기에 사실상 복지만 강조했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좌파의 해법을 쫓았다는 얘기다.

 

물론 양극화 문제를 하류에서 나마 해결하려면 높은 세금과 풍부한 복지 재정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세금과 재정 구조로 보면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장, 경쟁, 양극화를 매우 격렬한 어조로 성토는 하지만, 실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진보가 양극화가 시대정신이라고 주구장창 부르짖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로부터도 별로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진보는 성적이 나쁠 수 밖에 없는 과목 한 두 개로 평가를 받으련가?

사실 지금 한국에서 양극화를 시대정신으로 여기고, 유럽 사회를 모범으로 삼는 정치세력은 항상 더 나쁘거나 별무신통인 성적표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세계화, 지식정보화, 중국 경제의 급부상으로 인한 구조조정, 한나절 생활권인 국토(수도권 집중), 국민들의 자유로운 선택의지와 경제적 기회에 역동적으로 반응하는 성질, 경제사회 주체들의 뿌리깊은 화전민적 경향, 조세 부담률을 쉽게 올릴 수 없는 조세 구조 등을 종합해 보면 그럴 수 밖에 없다.

(참고로 한국은 전체 법인수 237,122개 중 상위 0.14%(324개)가 전체 법인세의 59.4%를, 상위 1.2%(2,843개)가 80%를 낸다. 소득세는 과세대상자의 상위 10%(실 납부자의 20%)가 80~90%를 낸다.게다가 방만한 공공부문도 증세의 발목을 잡는다.)

 

 한마디로 진보가 양극화를 시대정신인양 떠들어댄다면, 성적이 나쁘게 나올 수 밖에 없는 과목 한 두 개로 자신의 학업 성적 전체를 평가 받으려는 학생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선생님과 학부모(유권자)는 양극화=격차축소라는 과목의 성적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양극화 과목보다는 부의 절대량(성장률, 일자리),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정의 –더 많이 주어야 할 곳에 더 주고, 더 적게 주어야 할 곳에 적게 주는 정의-, 경제사회적 활력(희망), 사회적 최소한의 상향(빈곤 개선) 과목 등에 훨씬 관심이 많다. 그래서 인지 몰라도 양극화가 한국보다 훨씬 심한 중국은 양극화 담론을 최상위에 놓지 않는다. 아마도 대부분의 문명국들은 그럴 것이다.

 

민노당, 진보신당, 이들과 철학, 가치, 정서가 비슷한 주류 진보언론, 개념 없는 시민단체 등은 양극화 해소와 비정규직 축소를 시대정신처럼 여기는 것은 어리석긴 하지만 그런대로 봐 줄 수는 있다. 그래야 참여정부나 민주당 같은 ‘(진보적)자유주의’ 세력을 정치적으로 도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그렇게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하지 않는 보수 세력의 성적을 높여 주기에 소탐대실이긴 하다) 하지만 민주당이 양극화를 시대정신으로 받드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다. 이같은 방어적 심리 내지 노동조합적 심리가 만든 프레임으로는 지식사회의 헤게모니를 쥘 수도 없고, 서민.중산층의 뜨거운 지지도 받을 수 없다. 생래적으로 획기적인 개혁 내지 이상을 추구하는 지식사회에서 압도적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세력은 진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미국 민주당, 영국 노동당은 진보가 맞지만, 한국의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은 과연 진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양극화 해소라는 말이 들어갈 자리는 대체로 ‘빈곤 해소(개선)’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된다. 영국 노동당, 독일 사민당, 미국 민주당이 1990년대 중 후반에 발표한 주요 강령적 선언에는 거의 예외 없이 빈곤(해소, 개선)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지, 양극화 해소라는 말은 없다. 당연하다. 빈곤 해소 과목(?)은 학부모(유권자)가 관심도 상대적으로 많고, 학생(진보 정당)도 비교적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격차 자체를 줄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최하층의 소득을 일자리, 세금, 복지 정책 등을 통하여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니! 양극화라는 프레임은 버려야 마땅하다. (계속)

 

출처: 사단법인 사회디자인 연구소

2009년 6월 10일 수요일

개성유감

 

개성유감(有感)


우려하고 걱정했던 사건이 결국 터져버렸다.

개성공단 입주업체 중 한회사가 개성공단에서 철수를 결정하였단다.


개성공단은 우리에게 어떤 곳인가?

50여년간 지속되온 민족간 적대관계를 완충시키고 한반도 평화정착의 실제적 과정으로 돌입하는 공간이 개성이었다.


6.15 공동선언이 발표되던 날.

몇십리 거리밖에 안되는 황해도 안악이 고향이신 아버지.

천추의 한이 맺힌 그곳을 잊기 위해 정말 고집스럽게 몇십년동안 눈가에 눈물자욱조차 남기길 거부했던 당신이 처음으로 소리내어 통곡하시던 날.


500만 이산가족 모두가 고향을 등지고 내려온 天刑의 무거운 죄책감을 벗고,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에게 속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던 날.


조국분단의 아픔은 민족 모두가 느끼는 아픔이다.

그러나 혈육간 생이별의 고통을 간직한 이산가족들의 경우는 더 특별할 수 밖에 없다.

말을 잃고 술로 세상을 잊으려 하고, 同鄕 지인들을 만나는 기쁨보다  기억을 잊으려 하고 또 그런 자신을 학대해야만 했던 분들.


6.15선언이후 개성공단에 우리 기업들이 입주를 시작할 때를 생각해본다.

정말 철의 장막 북한 땅에서 기업을 할 수 있을까? 혹시 총에 맞거나 인질로  잡혀 평생을 강제 수용소에서  보내는 건 아닌지. 이런 황당한 생각과 의문들은 그때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이 그런 곳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수천마리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고, 기업의 이익보다 민족의 미래를 걱정했던 중소기업가들의 결단과 용기가 남북간 대치 최접점인 개성에 공단을 만들어내는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


개성공단이 완공되고 수십개의 회사가 입주해있던 시기에 나는 개성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군복을 줄여 입은 듯 대개가 국방색 옷을 입고, 버짐 핀 얼굴에 때꾸정물이 줄줄 흐르는 아이들이 수줍은 미소로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할 때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죄스러움.


말로만 듣던 송악산은 왜 그렇게 황량해보이던지. 

소나무가 울창하리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바위와 흙먼지뿐인 민둥산이 내가 처음 본 송악산이었다. 개성시내를 지난 차량이  개성공단 입구에 도착하자 시내를 지나면서 입었던 마음의 상처가 조금씩 위로를 받는다. 쾅,쾅,쾅 한쪽에선 공단터를 확장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고 안내를 받아 방문한 공장에선 북한 주민들이 열심히 자신이 맡은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시내에서 마주쳤던 아이들에게 느꼈던 연민과 죄스러움이 이곳에선 안도감과 감격으로 다가온다. 그랬다. 남한에서 이런저런 단체가 돈을 모금하고, 연탄과 농산물 등을 북한주민에게 지원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남과 북이 공동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그 성과로 자라나는 아이들을 충분히 먹이고 튼튼하게 키우는 사업이야말로 민족 평화공존의 핵심이다란 확신을 갖게 했다..


이북출신인 아버지는 자존심이 무척 강하시다. 역사적으로나 일반적인 세간의 평가 역시  북쪽 동포들은 자존심이 강하다고 한다. 도움을 주면서도 미안해하는 남한 사람들이나 자존심 구겨가며 지원을 받는 것을 찝찝해하는 북쪽 사람들의 관계보단 “내가 벌어 내가 쓴다”가 훨씬 발전적인 것만은 확실하다.


개성공단은 남쪽 기업에도 이득을 가져왔다.

우수한 인력과 값싼 임대료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한반도가 아닌 평화가 정착되는 정세가 가져다주는 무한한 시장의 가치.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집없는 서민들의 생존권 투쟁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국가경쟁력과 국제적 신용하락의 칼을 휘두르는 꼴통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반도 평화가 가져다주는 경제적 가치와 국제적 신용상승 효과를 꼴통들은 애써 모른척해야만 자신들이 살 수 있었으리라.

개성공단에 투자하는 돈을 퍼주기라 우기는 반기업가 정신을 가진 사람들.

아프리카 貧國에 1년 무상 지원하는 정도

의 돈이 북한에 투자되고 지원되는 것을 퍼주기라  우겨 정치적 이득과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들. 진보주의자임을 자처하면서도 남북한 평화가 진보진영 최상의 과제임을 모르는 철없는  좌파들.


개성공단이 평화의 기지, 한반도의 미래를 견인 할 성장 동력임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선거에서 이겼고, 또 여전히 막강한 힘과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개성공단에서 철수를 결정한 회사 대표님께  죄송하다는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분은 평화가 가져다주는 가치를 믿고, 투자를 결심하고, 아침, 저녁 휴전선을 넘나드는 출퇴근을 마다않고 기업을 살리려했을 것이다.


“콘테이너 박스”로 상징되는 MB정권의 냉전적 대북정책으로 인해 사업장 철수라는 불가피한 선택을 강요받았을 회사 사장님과 직원분들께 진심으로 미안하다.


지켜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주둥이만 살아있는 정치인 수십명과도 바꿀 수 없는 개성공단 입주 업체 대표와 직원분들에게 내가 지금 해줄 수 있는 것은 위로의 말 한마디뿐이다.

2009년 6월 8일 월요일

서럽고 그리운 감악산

 

지난주 토요일 감악산 산행을 약속하였으나 모친의 끈질긴 압박(?)에 산행을 포기하고 파주 농장에 가서 노가다를 제대로 하였다.

 

감악산.

680m 높이의 산이지만  감악산은 남쪽으론 양주벌판,북쪽과 서쪽으론 임진강 하류지역의 광활한 평야지대를 품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인위적으로 잘리워진 북쪽땅 개풍군까지 이어져 있다.

 

감악산 정상에 오르면 오랜 세월을 버텨온 돌비석 하나가 우뚝 서있는데 신라 진흥왕비란 주장과 이곳 출신 당나라 장군 설인귀의 비란 설도 있으나, 중용한 것은 그 비석을 그곳에  왜 세웠는가 일 것이다

 

임진강이 퇴적해놓은 황금의 옥토.

강은 역사적으로 인간의 삶과 문명을 진보시키는 역할을 해왔고,항상 강을 둘러싸고 끊임없는 다툼과 전쟁이 빈발해왔다.

 

한반도의 가운데를 관통하는 임진강을 내려다보고 서있는 감악산.

그래서 그산은 삼국이 대립하고 갈등했던 역사로 알 수 있듯이 서로가 점령해야만 하는 목표, 즉 전략적 요충지로 운명지워져 왔다.

 

감악산을 오르는 길엔 백년 이상된 거대한 나무들을 찾기 힘들다.

대신 아슬아슬한 바위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감악산이 격었을 사연을 담은 등과 허리가 굽은 소나무들이 많다.

 

민족 최대비극인 6.25 전쟁의 흔적 역시도 감악산의 운명인가 보다.

휴전을 앞두고 남과북이 쏟아부은 포탄과 총알비에 감악산 바위 곳곳에는 이름 모를 병사들의 피맺힌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

 

비교적 다른 유명산에 비해 등산객이 적은 감악산을 오를 떄 ,갑자기  숲속의 적막감이 내몸을 감싸면 으스스 나도 모르게 몸을 추스리게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싶다.

 

커다란 바위가 포탄에 꺠져 크고 작은 돌덩이로 변해버린 감악산 등산로를 걸어 오를 때면 한발 한발 내딛는 걸음조차 조심스럽다.

 

불과 10여년전까지해도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고막이 터져나갈 정도로 남과 북이 고출력 대형 스피커를 틀어놓고 아무도 듣지 않는 고함과 욕설이 난무하던 곳.

 

그떄 감악산 등반은 불가능했다.

 

감악산을 오르는 산행은 그래서 나에게 각별하다.

20대 청년 시절 무심코 감악산이란 명성만 찾아 감악산을 찾았을 떄 격어야했던 두려움과 공포, 서글픔....

 

몇해전 감악산을 다시 찾았을 때 목구멍을 타고 넘치는 가슴속 덩어리.

그리고 다시 몇번을 감악산을 오르면서  감악산의 역사를 가슴에 품게되고, 임꺽정이 관군에 쫒겨 마지막 저항의 숨결을 거두었다는 까치봉의 애절한 전설까지를 알게된 나는 감악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악산은 지금 휴전중이다.

정상에 오르면 맑은 눈을 가진 젊고 선한 표정의 병사들이 총을 들고 등산객을 맞이 하고, "사진촬영 금지"라고 쓰인 시뻘건 팻말이 이곳이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지역임을 주지시킨다.

 

그러나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사진촬영 금지라는 그 무시무시한 경고문을 무시한체 사진기 섯터를 무지하게 눌러댄다.

 

지금도 여전히 철책을 경계로 적대적 긴장관계가 지속되는 공간에서 ,안보불감증에 걸린 철없는 백성들(?)이 감악산 정상을 차츰 차츰 점령해가는 뒤틀려진 현실이 서글퍼진다.

 

나는 턱까지 타올라온 갈증에 정상에서 파는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내자식 나이 또래 대한민국 젊은 병사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저 멀리 임짐강 너머 가물가물 보이는 곳을 부끄럽게 쳐다볼 뿐이다.

 

감악산 산행은 서럽지만 그리운 길이다. 기회가 되면 사랑하는 이들과 그길을 다시 오르리라.

 

 

 



 

경의선 복선 개통.

 

 

경의선 복선전철(문산~성산) 개통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오랬동안 경의선 복선화를 둘러싸고 참 말도 ,사연도 많았다.

경의선 복선전철 개통은 시작일뿐 앞으로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산적해있다는 걸 의미한다.

 

고양시나 파주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라면 경의선 복선화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복선화의 추진과정에서 일부구간의 지하화를 요구했던 시민단체와 거주민들의 반대와 문제제기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체 지상 복선화가 강행되었다는 점이다.

 

10년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행정이 낳은 예고된 갈등이었다.

사실 경의선이 지나가는 구간을 지나다보면 이미 대규모 주거단지와 학교 등이 들어서 있어 안전문제나 소음, 주거환경 변화에 따른 문제가 발생할 것임은 분명하다.

 

도심을 질러가는 구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예산절감이니 주민들의 현실적 요구 등의  이유를 들어 외면하는  행정편의적 사고는 차후 더 큰 비용을 감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고양시나 파주시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 다수는 서울에 직장을 두고 출퇴근하고 있다.

출근길이면 꽉막힌 자유로와 통일로속에 파묻혀 시간낭비,돈낭비에 속앓이를 한다,

서울로 나가는 버스는 사람들의 바쁜 마음과 달리 뺑글뺑글 온동네 구석구석 유람시키고 느긋하게 서울땅에 입성한다.

지하철은 또 어떤가?

매일 매일 하루를 무사히 넘겼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할 정도로 지긋지긋한 전쟁터나 다름없다.

 

-경험해보지 않은 자! 말하지 마라.-

 

나는 자가용으로 출퇴근 한다.

다행히 직업이 자영업이라  다른 사람들보다 여유가 있다.

 

아침 출근 전쟁이 끝난 9시쯤 출발하면 직장인 여의도까지 22km거리를 한시간에 걸쳐 도착한다.  출근 시간때에 차를 몰다면 2시간은 기본이다.한시간이면 천안,2시간이면 대전에 도착할 시간을 나는 매일 까먹고 있다.

 

달리는 시간보다 서있는 시간이 많으니 짜증은 곱배기가 된다.

온순한 성격의 사람도 성질 더러워지는 건 당연하다.

 

어쨌든 경의선 복선화 1차 공사가 끝나고 한달 뒤면 문산~성산 구간이 개통되고, 출퇴근 시간 열차배정 간격도 지금까지 35분에서 10~15분 사이로 단축된다하니 , 이참에 자가용 출퇴근과 이별하고 경제적이고 느긋한 출퇴근을 꿈꿔본다.

 

내가 사는 고양시 중산마을에서 풍산역이나 일산역까진 걸어서 20여분, 자전거로 10여분거리이다. 자전거로 매일 아침 10분~15분을 달리고 운좋으면(아마 불가능할 것이지만)경의선 열차 좌석에 앉아 느긋하게 신문을 읽거나 책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가 앞선다.

 

또 출퇴근길에 만나게 될 동네분들, 우연히 만나게 될 오래된 인연들.

어쩌면 젊은 시절 백마역 화사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음흉한 음모를 꾸몄던 멤버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경의선 복선화가 가져다 줄 생활의 변화를 상상하며 아파트 거치대에 묶혀두었던 자전거를 손질해본다.

 

근데 우리 동네 아파트 가격은  왜 오르지도 않나? 거참.

우리 아파트 앞에는 일산에서 제일 높은 고봉산도 있고,뒤로는 일산 최대 잔디 구장도 있는데... 

2009년 6월 4일 목요일

경의선 열차시간표

○서울 → 임진강  기차시간표

 

-   2001 서울 → 임진강  05:50 →07:13   
-   2003 서울 → 임진강  06:50 →08:13  
-   2005 서울 → 임진강  07:50 →09:13    
-   2007 서울 → 임진강  08:50 →10:13    
-   2009 서울 → 임진강  09:50 →11:13     
-   2011 서울 → 임진강  10:50 →12:13     
-   2013 서울 → 임진강  11:50 →13:13    
-   2015 서울 → 임진강  12:50 →14:13     
-   2017 서울 → 임진강  13:50 →15:13     
-   2019 서울 → 임진강  14:50 →16:13    
-   2021 서울 → 임진강  15:50 →17:13     
-   2023 서울 → 임진강  16:50 →18:13     
-   2025 서울 → 임진강  17:50 →19:13    
-   2027 서울 → 임진강  18:50 →20:13     
-   2029 서울 → 임진강  19:50 →21:13    
-   2033 서울 → 임진강  21:50 →23:13

   

○서울 ↔ 임진강역간 기차운임요금
통근열차
자유석 : 어른=1,300원,     어린이=700원,     노인=700
 
 
 
○서울 → 임진강  기차시간표

 

-   2038 임진강 → 서울  06:25 →07:48    
-   2004 임진강 → 서울  06:50 →08:14    
-   2040 임진강 → 서울  07:25 →08:48    
-   2006 임진강 → 서울  07:50 →09:14    
-   2008 임진강 → 서울  08:50 →10:14    
-   2010 임진강 → 서울  09:50 →11:14     
-   2012 임진강 → 서울  10:50 →12:14    
-   2014 임진강 → 서울  11:50 →13:14    
-   2016 임진강 → 서울  12:50 →14:14   
-   2018 임진강 → 서울  13:50 →15:14   
-   2020 임진강 → 서울  14:50 →16:14    
-   2022 임진강 → 서울  15:50 →17:14    
-   2024 임진강 → 서울  16:50 →18:14    
-   2026 임진강 → 서울  17:50 →19:14    
-   2028 임진강 → 서울  18:50 →20:14
-   2030 임진강 → 서울  19:50 →21:14   
-   2032 임진강 → 서울  20:50 →22:14    
-   2034 임진강 → 서울  21:50 →23:15  

 

○임진강 ↔ 서울역간 기차운임요금
통근열차
자유석 : 어른=1,300원,     어린이=700원,     노인=700
 

서울 ↔임진강간 운행소요시간은 1시간 24분입니다. 요금은 1,300원이지요.

 

○ 도라산 ?

파주시에서는 철도청과 함께 도라산역 연계관광 열차를 일3회 운행하고 있습니다.
통일의 상징인 도라산역과 도라전망대, 제3땅굴, 통일촌 등 인근의 안보관광지와

민통선 마을을 견학할 수 있습니다.

 

 

도라산역 연계관광 이용절차

 

 

 

 

민통선 출입절차

 

-. 모든 관광객은 임진강역에 내려서 반드시 신분증을 소지하고 민통선 출입수속을

    하게 됨
-. 어린이는 보호자 동반에 한하여 출입 가능
-. 외국인의 경우 여권 소지객에 한해 출입 가능

 

 

 

연계관광코스 및 요금

 

-. 관광코스 : 도라산역 → 도라전망대 → 제3땅굴 → 통일촌 → 도라산역  
-. 열차요금 : 서울역 기준 도라산역 1,300
-. 연계관광요금(셔틀버스 사용료) : 어른 8,700원, 어린이 6,700원,                                                  장애인/국가 유공자 3,300

 

 

 

유의사항

 

-. 1개 열차당 300명 이내의 인원이 도라산역까지 들어가도록 출입인원을 제한하게

    되어  있으니 사전에 승차할 역(경의선 서울역~임진강역간 각 역)에 승차권 구입

    가능여부를  미리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도라산역 열차운행 안내

 

도라산역으로 들어갈때

도라산역에서 나올때

구분

서울역 출발

임진강역 출발

도라산역출발

열차
번호

출발
시각

열차
번호

출발
시각

열차
번호

출발
시각

승차대상

1회

1457

09:10

1459

11:43

1466

13:14

도라산역 연계관광객

120명

1470

15:14

도라산역 연계관광객

180명

2회

1459

10:10

1461

12:43

1468

14:14

도라산역 연계관광객

300명

3회

1461

11:10

1463

13:43

1470

15:14

도라산역 연계관광객

120명

1474

17:14

도라산역 연계관광객

180명

 

매주 월요일은 관계기관의 시설 및 장비점검을 위한 임진강~도라산역간 열차운행이

     중지됩니다.


 

 

알림 [2]

 

현재 운행되고 있는 야경열차는 운행횟수가 지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표구하기가 어려운 상태 입니다.

아래열차를 이용한 야경열차를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환상의 서울야경순환열차
● 운행일 : 아래일정표참조 (서울, 신촌출발)
● 운행시각 및 코스 :

     서울(19:20)-신촌(19:26)-교외선-도심야경(의정부-성북-청량리)-

     한강야경 감상(응봉-서빙고)-용산-서울(21:48)
● 차내이벤트(내용의 일부 변경이 있을 수 있음)
- 사랑의 와인 페스티벌, Mood재즈 콘서트 1부/2부, 한밤의 DJ방송
※ 와인, 음료, 안주 제공
● 상품요금 : 어른 29,000원, 경노27,000원, 소인26,000원


승차권 구입 및 전화예약 : KTX관광레저(주) 02-393-3100

 

http://www.ktx21.com/ ☜이곳으로 클릭해서 검토확인이 가능하십니다.

상단메뉴중 국내여행-관광전용열차여행으로 들어가면 나옵니다..

 

출처 : 한국철도공사/www.ktx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