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8일 월요일

서럽고 그리운 감악산

 

지난주 토요일 감악산 산행을 약속하였으나 모친의 끈질긴 압박(?)에 산행을 포기하고 파주 농장에 가서 노가다를 제대로 하였다.

 

감악산.

680m 높이의 산이지만  감악산은 남쪽으론 양주벌판,북쪽과 서쪽으론 임진강 하류지역의 광활한 평야지대를 품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인위적으로 잘리워진 북쪽땅 개풍군까지 이어져 있다.

 

감악산 정상에 오르면 오랜 세월을 버텨온 돌비석 하나가 우뚝 서있는데 신라 진흥왕비란 주장과 이곳 출신 당나라 장군 설인귀의 비란 설도 있으나, 중용한 것은 그 비석을 그곳에  왜 세웠는가 일 것이다

 

임진강이 퇴적해놓은 황금의 옥토.

강은 역사적으로 인간의 삶과 문명을 진보시키는 역할을 해왔고,항상 강을 둘러싸고 끊임없는 다툼과 전쟁이 빈발해왔다.

 

한반도의 가운데를 관통하는 임진강을 내려다보고 서있는 감악산.

그래서 그산은 삼국이 대립하고 갈등했던 역사로 알 수 있듯이 서로가 점령해야만 하는 목표, 즉 전략적 요충지로 운명지워져 왔다.

 

감악산을 오르는 길엔 백년 이상된 거대한 나무들을 찾기 힘들다.

대신 아슬아슬한 바위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감악산이 격었을 사연을 담은 등과 허리가 굽은 소나무들이 많다.

 

민족 최대비극인 6.25 전쟁의 흔적 역시도 감악산의 운명인가 보다.

휴전을 앞두고 남과북이 쏟아부은 포탄과 총알비에 감악산 바위 곳곳에는 이름 모를 병사들의 피맺힌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

 

비교적 다른 유명산에 비해 등산객이 적은 감악산을 오를 떄 ,갑자기  숲속의 적막감이 내몸을 감싸면 으스스 나도 모르게 몸을 추스리게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싶다.

 

커다란 바위가 포탄에 꺠져 크고 작은 돌덩이로 변해버린 감악산 등산로를 걸어 오를 때면 한발 한발 내딛는 걸음조차 조심스럽다.

 

불과 10여년전까지해도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고막이 터져나갈 정도로 남과 북이 고출력 대형 스피커를 틀어놓고 아무도 듣지 않는 고함과 욕설이 난무하던 곳.

 

그떄 감악산 등반은 불가능했다.

 

감악산을 오르는 산행은 그래서 나에게 각별하다.

20대 청년 시절 무심코 감악산이란 명성만 찾아 감악산을 찾았을 떄 격어야했던 두려움과 공포, 서글픔....

 

몇해전 감악산을 다시 찾았을 때 목구멍을 타고 넘치는 가슴속 덩어리.

그리고 다시 몇번을 감악산을 오르면서  감악산의 역사를 가슴에 품게되고, 임꺽정이 관군에 쫒겨 마지막 저항의 숨결을 거두었다는 까치봉의 애절한 전설까지를 알게된 나는 감악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악산은 지금 휴전중이다.

정상에 오르면 맑은 눈을 가진 젊고 선한 표정의 병사들이 총을 들고 등산객을 맞이 하고, "사진촬영 금지"라고 쓰인 시뻘건 팻말이 이곳이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지역임을 주지시킨다.

 

그러나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사진촬영 금지라는 그 무시무시한 경고문을 무시한체 사진기 섯터를 무지하게 눌러댄다.

 

지금도 여전히 철책을 경계로 적대적 긴장관계가 지속되는 공간에서 ,안보불감증에 걸린 철없는 백성들(?)이 감악산 정상을 차츰 차츰 점령해가는 뒤틀려진 현실이 서글퍼진다.

 

나는 턱까지 타올라온 갈증에 정상에서 파는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내자식 나이 또래 대한민국 젊은 병사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저 멀리 임짐강 너머 가물가물 보이는 곳을 부끄럽게 쳐다볼 뿐이다.

 

감악산 산행은 서럽지만 그리운 길이다. 기회가 되면 사랑하는 이들과 그길을 다시 오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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