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0일 수요일

개성유감

 

개성유감(有感)


우려하고 걱정했던 사건이 결국 터져버렸다.

개성공단 입주업체 중 한회사가 개성공단에서 철수를 결정하였단다.


개성공단은 우리에게 어떤 곳인가?

50여년간 지속되온 민족간 적대관계를 완충시키고 한반도 평화정착의 실제적 과정으로 돌입하는 공간이 개성이었다.


6.15 공동선언이 발표되던 날.

몇십리 거리밖에 안되는 황해도 안악이 고향이신 아버지.

천추의 한이 맺힌 그곳을 잊기 위해 정말 고집스럽게 몇십년동안 눈가에 눈물자욱조차 남기길 거부했던 당신이 처음으로 소리내어 통곡하시던 날.


500만 이산가족 모두가 고향을 등지고 내려온 天刑의 무거운 죄책감을 벗고,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에게 속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던 날.


조국분단의 아픔은 민족 모두가 느끼는 아픔이다.

그러나 혈육간 생이별의 고통을 간직한 이산가족들의 경우는 더 특별할 수 밖에 없다.

말을 잃고 술로 세상을 잊으려 하고, 同鄕 지인들을 만나는 기쁨보다  기억을 잊으려 하고 또 그런 자신을 학대해야만 했던 분들.


6.15선언이후 개성공단에 우리 기업들이 입주를 시작할 때를 생각해본다.

정말 철의 장막 북한 땅에서 기업을 할 수 있을까? 혹시 총에 맞거나 인질로  잡혀 평생을 강제 수용소에서  보내는 건 아닌지. 이런 황당한 생각과 의문들은 그때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이 그런 곳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수천마리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고, 기업의 이익보다 민족의 미래를 걱정했던 중소기업가들의 결단과 용기가 남북간 대치 최접점인 개성에 공단을 만들어내는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


개성공단이 완공되고 수십개의 회사가 입주해있던 시기에 나는 개성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군복을 줄여 입은 듯 대개가 국방색 옷을 입고, 버짐 핀 얼굴에 때꾸정물이 줄줄 흐르는 아이들이 수줍은 미소로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할 때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죄스러움.


말로만 듣던 송악산은 왜 그렇게 황량해보이던지. 

소나무가 울창하리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바위와 흙먼지뿐인 민둥산이 내가 처음 본 송악산이었다. 개성시내를 지난 차량이  개성공단 입구에 도착하자 시내를 지나면서 입었던 마음의 상처가 조금씩 위로를 받는다. 쾅,쾅,쾅 한쪽에선 공단터를 확장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고 안내를 받아 방문한 공장에선 북한 주민들이 열심히 자신이 맡은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시내에서 마주쳤던 아이들에게 느꼈던 연민과 죄스러움이 이곳에선 안도감과 감격으로 다가온다. 그랬다. 남한에서 이런저런 단체가 돈을 모금하고, 연탄과 농산물 등을 북한주민에게 지원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남과 북이 공동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그 성과로 자라나는 아이들을 충분히 먹이고 튼튼하게 키우는 사업이야말로 민족 평화공존의 핵심이다란 확신을 갖게 했다..


이북출신인 아버지는 자존심이 무척 강하시다. 역사적으로나 일반적인 세간의 평가 역시  북쪽 동포들은 자존심이 강하다고 한다. 도움을 주면서도 미안해하는 남한 사람들이나 자존심 구겨가며 지원을 받는 것을 찝찝해하는 북쪽 사람들의 관계보단 “내가 벌어 내가 쓴다”가 훨씬 발전적인 것만은 확실하다.


개성공단은 남쪽 기업에도 이득을 가져왔다.

우수한 인력과 값싼 임대료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한반도가 아닌 평화가 정착되는 정세가 가져다주는 무한한 시장의 가치.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집없는 서민들의 생존권 투쟁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국가경쟁력과 국제적 신용하락의 칼을 휘두르는 꼴통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반도 평화가 가져다주는 경제적 가치와 국제적 신용상승 효과를 꼴통들은 애써 모른척해야만 자신들이 살 수 있었으리라.

개성공단에 투자하는 돈을 퍼주기라 우기는 반기업가 정신을 가진 사람들.

아프리카 貧國에 1년 무상 지원하는 정도

의 돈이 북한에 투자되고 지원되는 것을 퍼주기라  우겨 정치적 이득과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들. 진보주의자임을 자처하면서도 남북한 평화가 진보진영 최상의 과제임을 모르는 철없는  좌파들.


개성공단이 평화의 기지, 한반도의 미래를 견인 할 성장 동력임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선거에서 이겼고, 또 여전히 막강한 힘과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개성공단에서 철수를 결정한 회사 대표님께  죄송하다는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분은 평화가 가져다주는 가치를 믿고, 투자를 결심하고, 아침, 저녁 휴전선을 넘나드는 출퇴근을 마다않고 기업을 살리려했을 것이다.


“콘테이너 박스”로 상징되는 MB정권의 냉전적 대북정책으로 인해 사업장 철수라는 불가피한 선택을 강요받았을 회사 사장님과 직원분들께 진심으로 미안하다.


지켜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주둥이만 살아있는 정치인 수십명과도 바꿀 수 없는 개성공단 입주 업체 대표와 직원분들에게 내가 지금 해줄 수 있는 것은 위로의 말 한마디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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