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이 고향인 선배는 키도 크고 누가 봐도 잘생긴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그를 한때 못말리는 열혈 민주투사라고 불렀지만 개인적으론 별로 어울린다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180cm를 훌쩍 넘긴 큰키에 구불구불 말려 올라간 머리칼.
조선 사람치곤 너무나 오똑한 콧날.
그런 그가 자신의 주장을 펴면 그 끝을 볼떄까지 지치지 않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열정의 소유자란 걸 알게 되고, 행동의 시점이 오면 순신간에 불섶으로 일어나 호령하던 장부란 점을 오랜 시간이 흐른뒤 알게 되었습니다. 또 순간만큼은 누구도 그 형님을 말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문득 문득 그 선배를 볼떄면 고 문익환 목사님을 연상하게 되더군요.
지난 세월의 역사가 한동안 어떤 사람을 중심으로 무엇인가를 도모하기를 강제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역시 형님은 누구의 말보다 앞서 행동으로 그 역할을 담당해주었지요.
세월이 갔습니다.
한동안의 꿈과 목표도 빛을 다해갔습니다.
서로를 강제했던 끈끈한 속박도 그 힘을 다해가더군요.
서럽고 안타깝지만 나는 그손을 놓아버리고 말았습니다.모두처럼....
첫번째로 형님이 쓰러졌습니다.
뇌혈관이 막히는 증세로 말이죠.
두번째로 형수님이 쓰러졌습니다.
형수님 역시 뇌혈관쪽 문제였습니다.
다행히 형님은 스스로 털고 일어났지만 형수님은 어려운 수술과정을 거쳐, 오랜기간 병원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지난 3월 형님이 계신 곳을 찾았습니다.
형님 부부는 울산이 아닌 충북 괴산 외딴 곳 시골마을 농가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술한잔 못하는 형님 부부앞에서 동행한 후배들이 실컷 취해 산골 전체가 떠나가도록 노랠 불렀습니다. 이별은 이별일 뿐이고, 만남은 새롭게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다짐과 함께 말이죠.
묵은 노래와 사연은 떠나 보내고 서로를 다시 부등켜안고, 정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자며 격려와 위로를 찐하게 나누었습니다. 최소한 진우형과 형수만큼은 숲과 나무, 바위, 흐르는 물을 벗삼아 알콩달콩 지냈으면 했습니다.
그런 그가 얼마전 지인들에게 다시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본격적인 인터넷 정치를 시작한겁니다.
강하고 격한 논지로 자신의 역사를 부활시키고 있습니다.
모질고 모진 병이 또 도졌습니다.
대한민국, 아니 세상밖 어디에 나가있어도 벗어던질 수 없는 "시대양심"이라는 바위산의 굴레.
아마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겠지만 그냥 형님 집앞에 서있는 느티나무처럼 넉넉한 그늘만이어도 좋을텐데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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