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3일 수요일

자식의 진로에 비겁해진 나!

어제 막내 아들의 진로 문제로 중학교 농구부 감독과 코치와 통화를 통해 다음주 테스트를 받기로 약속을 하고 난 후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자식들의 진로는 본인 스스로가 결정하고 부모의 역할은 보다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포터스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다짐 다짐 해왔었는데, 막상 중학교 입학부터 진로를 결정하게 되자 과연 이선택이 옳은가라는 회의와 함께 아들놈에게 은근히 화도 난다.

 

좀더 시간을 갖고 선택해도 늦진 않을텐데.

운동선수로 산다는 것이 힘들고 성공 가능성도 높지 않으니,여느 애들처럼 일반과정을 소화한 후 결정해주면 편할텐데.

 

뭐 아직 테스트에 통과한 것도 아니지만 마치 그길로 접어든 것 같은 조급함 마음에 괜시리 불안해진다.

솔직히 말하자면 농구선수의 길을 선택하고자 하는 아들이 좀 밉다.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에 관심을 갖고, 욕심도 내길 내심 바라고 있는 아빠의 속마음을 왜 모를까?

 

그런데 아들놈은 공부엔 아직 취미를 붙이지 못하고 있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아들놈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는 책 몇번 읽어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런 내가 아들이 공부를 좋아하고 학습능력이 탁월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엄마 아빠가 밖으로 돌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 아들놈은 부모의 정과 사랑을 듬뚝 받지 못한 아이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유독 먹는 것에 집착이 강했고, 초등학교 3학년에 이르러선 몸이 비만상태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택견과 농구였는데 아들은 지금 농구를 너무 좋아하고 ,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이라 여긴다.동네 또래 친구들보다 월등히 큰 키와 체격덕분에 경기를 하면 항상 이긴다.

올 여름에는 유소년 클럽대항 전국대회에 참가해 준우승의 성적도 얻어냈다.

 

이지점에서 아들은 농구선수의 길을 결심한 듯 하다.

사실 아빠가 보기엔 실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다.

체격조건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뿐 순발력이나 기술이 탁월한 것은 아니다.

 

취미로 하는 동네 농구 수준이라면 잘한다고 할 정도인데 아들은 직업적으로 선수생활의 길을 가고자 한다.

아직 어리고 자신의 인생목표를 바꿀 수 있는 나이이기에 농구팀에 테스트 요청을 하게 되었는데 이젠 아빠인 내가 흔들리고 있다.

 

만약 테스트를 통과한다면.

중학교,고등학교 6년간은 선수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정말 자질이 있어 농구선수로서 대학도 가고 프로선수도 되고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무슨 선택을 다시 할수 있을까? 다시 공부를 한다.사업을 한다. 취직을 한다.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다.

 

아들은 지금 두려워하고 있지 않다.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빠이다.

 

같이 있는 친구와 의논해 보았다.

결론이 간단하다.

잘하고 있고 잘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면 그길을 선택케 하는 것이 옳고, 불확실한 미래의 몫 역시 아들놈의 것이기 때문에 선택을 맡겨두어야 한단다.

 

그리고 축구선수 출신 이재중 변호사의 인생역전기란 기사를 복사해 내책상위에 올려놓는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해 고등학교때는 전국대회 2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실력파였던 그가 대학에 건축학과 특기생으로 들어갔으나 공부에 대한 부담과 부상으로 인해 축구를 포기하게 되지만 군제대 후 새로운 도전을 통해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지금은 변화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그야말로 감동, 인생역전 드라마이다.

그러나 이치는 간단하다.

사람의 인생에는 주어진 길이 없다.

 

익숙한 길이라 여겨 과속으로 달리기도 하지만 번번히 좌절하고, 또 다른 길을 찾아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야 하는 것이 인생아니던가?

 

다음주 테스트에서 실력이 모자라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면 아들놈의 첫번째 인생시련이 시작된 것이고,통과한다면 새로운 영역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도전을 본격화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자.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아들놈이 테스트에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첫번째 시련을 다가오면 또 다른 선택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도전이 성공한다면 그길에 매진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성원하는 일만이 남아있다.

 

아들의 인생을 나의 인생경험속에 가두어선 안된다.

나의 실패 경험과 미래의 불확실성이 두려워 아들의 꿈과 목표를 수정하려해선 안된다.

 

도대체 난 아들에게 뭘 기대했단 말인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회의 한구성원으로 책임있게 살아갈 수 있으면 그만인것을 속된 말로 아빠의 인생을  보상받으려 했던 속물적 근성을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인생의 종반전을 치닫고 있는 나의 소심한 시선으로 아들을 가두지 말자.

인생의 첫 스타트를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하려 하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자.

 

일주일 뒤 아들과 나는 또 다른 선택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가 미래를 이길 수 없듯이 아들놈의 선택에 가속도가 붙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미안하다. 아들!

아빠가 아들에 대한 믿음이 약했던 것 같다.

 

힘내라 아들!

그리고 앞으로 앞으로 무지막한 속도로 전진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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