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4일 월요일

파 140뿌리 농장.

40층짜리 아파트앞 농장(?)

파 140뿌리 농장.


세월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생이 세월속에서 순환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는 서울 4대문 밖 바로 언저리였음에도 어느 시골 못지않은 풍경과 환경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앞 큰도로엔 전차가 지나갔고 뒷문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선 다닥다닥 판자집이 연이어 이어져 산중턱쯤에 와서야 인가의 끝을 볼수 있었죠.

 

판자집들이 늘어섰던 그 산 뒤론 연세대학교 농과대학에서 운영하는 농업실습장이 있었고  산속 곳곳에 논과 밭이 꽤 넓게 퍼져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갈곳 없던 동네 아이들이 배고픔도 달래고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장소가 바로 딋산이었습니다. 지금은 안산이라 명명되고 있지만 당시엔 금화산이라 불렸고 그 산의 정기를 내려받은  금화초등학교가 지금도 굳건히 버티고 있습니다. 아무튼 산자락 곳곳에 논과 밭이 있었던 관계로 여름철에는 개구리들의 떼울음소리가 들렸고 가을이 되면 메뚜기떼들이 하늘위로 날아오르곤 하였죠. 


그당시 개구리와 메뚜기는 아이들의 훌륭한 간식거리였고 곳곳에 심어져 있던 오이나 무우, 가지 역시 아이들의 요기거리로 종종 서리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 크지 않은 산이었음에도 좁은 계곡 속으로 들어가면 가재나 물방개를 쉽게 볼 수 있었고 계곡물을 막아 보를 만들면 어느 수영장 못지않은 피서지가 되곤 하였습니다.


40중반이 넘는 나이가 되면서 논과 밭이 있는 곳을 지나칠때면 괜시리 눈가에 눈물이 고이고, 잠깐의 짬을 내서라도 흙을 한운쿰 손으로 집어 냄새를 맡고 好氣로 오이나 가지를 몇 개 집어 씹게 되더군요. 


 

몇 년 전 파주 한구석에 자리잡은 막내동생 덕분에 자그마한 경작지를 갖게 되었는데 이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줄이야.


작물이래봐야 상추, 고추, 오이, 가지 등 비교적 재배가 쉬운 몇가지를 심어보았는데 잠자리에 들어서도 눈앞에 아른아른거리고 비가 오거나 가뭄이 오래가면 작물들이 죽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서둘러 달려가게 되더군요.


 

그리고 냄새나는 땅을 맨발로 밟고 서있으면 마치 제가 이땅의 오랜 주인인 농사꾼인양 편한해지는 것이...

잘익은 방울 토마토


허허 그것참.

제가 생각해도 참 우습고 황당했지만 그렇게 된 걸 어쩌란 말입니까

무작정 좋아지는걸.

생업으로 농사짓는 분들에겐 면목없지만  나도 이제 어엿한 농사꾼이 되어간다는 흐믓함을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올봄에는 동네 후배의 도움으로 집근처에 30여평 경작지도 새로 얻었습니다.

매일같이 술로 서로를 위로하던 친구와 그밭을 경작하기로 하고 첫 번째 작물로 파를 심기로 했습니다. 퇴근길에 모종파는 곳에 가서 꽤 경험이 많은 척 하면서 14000원을 투자하여 파 모종을 구입하고  한뿌리 한뿌리 나누어 넉넉하게 심어보니 대략 140뿌리나 되더군요.


 

바람이 조그만 불어도 꺽어질 것 같은 야들야들한 파모종들이 이젠 제법 허리통도 굵어졌고 그중 앞선 놈은 줄기 몇쪽을 번식시키는 능력까지  보여줍니다.


파 140쪽을 성공적으로 경작한 경험과 자부심으로 감자와 고구마, 호박, 들깨, 콩을 더 심었는데 너무도 잘자라주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다르게 자라는 작물들을 바라보면서 40여년전  동무들과 함께 했던 추억의 감상속으로 빠져봅니다. 훌쩍훌쩍 마시는 막걸리 몇잔이 감흥을 더욱 깊게 합니다. "헤~~`일수 없이  수많은 밤을......." 이미자씨의 동백아가씨가 함께 저절로 나옵니다.

파를 다듬는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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